Home Actor Lee Oi-soo HD Photos and Wallpapers February 2020 Lee Oi-soo Instagram -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성실하고 치열하게는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75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김일성도 겪었고, 김정일도 겪었고, 지금은 김정은을 겪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화천 양구 인제 등지의 군사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수없이 많은 반공방첩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지요. 옛날에는 남북관계가 최악이었습니다. 뻑하면 무장공비들이 출몰했고 뻑하면 간첩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반공방첩 웅변대회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기도 했지요.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습니다. 1968년에는 육군에 입대,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본 부관김실에서 근무했고 1971년에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김신조가 중무장한 병사들을 인솔해서 서울에 입성, 총격전까지 벌였고 이어서 미전함 푸에블로 호가 동해에서 북한군에게 나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제 군번은 1184로 시작됩니다. 앞번호가 11로 시작되는 군번이 속칭 와르바시 군번입니다. 이 군번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년 병장들이 제대특명을 받기 직전에 김신조와 푸에블로 호 때문에 느닷없이 전시체제로 돌입, 제대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참들은 오로지 졸병을 괴롭히는 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3년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복무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버님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국가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제 아들 2명도 병역을 필했습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병역의 의무를 필한 애국자 집안이지요. 그런데 시바, 자식도 군대 안 보내고 본인도 군대 안 갔다온 쉐키들이, 거총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쉐키들이, 저를 빨갱이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모는 쉐키들은 대부분 빨갱이보다 더 악질적인 짓거리를 일삼거나 매국매족을 애국애족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쉐키들은, 기레기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한 기사들을 무슨 경전처럼 신봉하거나 적폐들의 망국적 주장이나 행위들을 적극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특성들을 나타내 보입니다. 어떤 작자는 유튜브를 통해 제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실과 무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감성마을에는 법률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문을 구했더니 고소할 요건이 충분하답니다. 오늘 면사무소에 가서 국가 유공자 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한 인물을 법적으로 응징하는 데 필요한 증거자료입니다. 앞으로 저를 함부로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악플러들이나 유튜브들은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징해 드리겠습니다. 악플초불행 선플만복래.

Lee Oi-soo Instagram –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성실하고 치열하게는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75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김일성도 겪었고, 김정일도 겪었고, 지금은 김정은을 겪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화천 양구 인제 등지의 군사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수없이 많은 반공방첩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지요. 옛날에는 남북관계가 최악이었습니다. 뻑하면 무장공비들이 출몰했고 뻑하면 간첩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반공방첩 웅변대회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기도 했지요.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습니다. 1968년에는 육군에 입대,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본 부관김실에서 근무했고 1971년에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김신조가 중무장한 병사들을 인솔해서 서울에 입성, 총격전까지 벌였고 이어서 미전함 푸에블로 호가 동해에서 북한군에게 나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제 군번은 1184로 시작됩니다. 앞번호가 11로 시작되는 군번이 속칭 와르바시 군번입니다. 이 군번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년 병장들이 제대특명을 받기 직전에 김신조와 푸에블로 호 때문에 느닷없이 전시체제로 돌입, 제대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참들은 오로지 졸병을 괴롭히는 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3년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복무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버님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국가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제 아들 2명도 병역을 필했습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병역의 의무를 필한 애국자 집안이지요. 그런데 시바, 자식도 군대 안 보내고 본인도 군대 안 갔다온 쉐키들이, 거총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쉐키들이, 저를 빨갱이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모는 쉐키들은 대부분 빨갱이보다 더 악질적인 짓거리를 일삼거나 매국매족을 애국애족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쉐키들은, 기레기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한 기사들을 무슨 경전처럼 신봉하거나 적폐들의 망국적 주장이나 행위들을 적극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특성들을 나타내 보입니다. 어떤 작자는 유튜브를 통해 제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실과 무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감성마을에는 법률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문을 구했더니 고소할 요건이 충분하답니다. 오늘 면사무소에 가서 국가 유공자 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한 인물을 법적으로 응징하는 데 필요한 증거자료입니다. 앞으로 저를 함부로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악플러들이나 유튜브들은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징해 드리겠습니다. 악플초불행 선플만복래.

Lee Oi-soo Instagram -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성실하고 치열하게는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75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김일성도 겪었고, 김정일도 겪었고, 지금은 김정은을 겪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화천 양구 인제 등지의 군사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수없이 많은 반공방첩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지요. 옛날에는 남북관계가 최악이었습니다. 뻑하면 무장공비들이 출몰했고 뻑하면 간첩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반공방첩 웅변대회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기도 했지요.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습니다. 1968년에는 육군에 입대,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본 부관김실에서 근무했고 1971년에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김신조가 중무장한 병사들을 인솔해서 서울에 입성, 총격전까지 벌였고 이어서 미전함 푸에블로 호가 동해에서 북한군에게 나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제 군번은 1184로 시작됩니다. 앞번호가 11로 시작되는 군번이 속칭 와르바시 군번입니다. 이 군번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년 병장들이 제대특명을 받기 직전에 김신조와 푸에블로 호 때문에 느닷없이 전시체제로 돌입, 제대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참들은 오로지 졸병을 괴롭히는 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3년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복무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버님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국가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제 아들 2명도 병역을 필했습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병역의 의무를 필한 애국자 집안이지요. 그런데 시바, 자식도 군대 안 보내고 본인도 군대 안 갔다온 쉐키들이, 거총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쉐키들이, 저를 빨갱이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모는 쉐키들은 대부분 빨갱이보다 더 악질적인 짓거리를 일삼거나 매국매족을 애국애족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쉐키들은, 기레기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한 기사들을 무슨 경전처럼 신봉하거나 적폐들의 망국적 주장이나 행위들을 적극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특성들을 나타내 보입니다. 어떤 작자는 유튜브를 통해 제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실과 무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감성마을에는 법률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문을 구했더니 고소할 요건이 충분하답니다. 오늘 면사무소에 가서 국가 유공자 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한 인물을 법적으로 응징하는 데 필요한 증거자료입니다. 앞으로 저를 함부로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악플러들이나 유튜브들은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징해 드리겠습니다. 악플초불행 선플만복래.

Lee Oi-soo Instagram –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성실하고 치열하게는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75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김일성도 겪었고, 김정일도 겪었고, 지금은 김정은을 겪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직업군인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화천 양구 인제 등지의 군사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수없이 많은 반공방첩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지요.
옛날에는 남북관계가 최악이었습니다. 뻑하면 무장공비들이 출몰했고 뻑하면 간첩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반공방첩 웅변대회에서 수없이 많은 상을 받기도 했지요.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습니다.
1968년에는 육군에 입대,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본 부관김실에서 근무했고 1971년에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김신조가 중무장한 병사들을 인솔해서 서울에 입성, 총격전까지 벌였고 이어서 미전함 푸에블로 호가 동해에서 북한군에게 나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제 군번은 1184로 시작됩니다.
앞번호가 11로 시작되는 군번이 속칭 와르바시 군번입니다. 이 군번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년 병장들이 제대특명을 받기 직전에 김신조와 푸에블로 호 때문에 느닷없이 전시체제로 돌입, 제대가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참들은 오로지 졸병을 괴롭히는 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3년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복무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버님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국가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제 아들 2명도 병역을 필했습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병역의 의무를 필한 애국자 집안이지요.
그런데 시바, 자식도 군대 안 보내고 본인도 군대 안 갔다온 쉐키들이, 거총도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쉐키들이, 저를 빨갱이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를 빨갱이로 모는 쉐키들은 대부분 빨갱이보다 더 악질적인 짓거리를 일삼거나 매국매족을 애국애족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자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쉐키들은, 기레기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한 기사들을 무슨 경전처럼 신봉하거나 적폐들의 망국적 주장이나 행위들을 적극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특성들을 나타내 보입니다.
어떤 작자는 유튜브를 통해 제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사실과 무관한 얘기들이었습니다.
감성마을에는 법률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문을 구했더니 고소할 요건이 충분하답니다.
오늘 면사무소에 가서 국가 유공자 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아버님의 명예를 훼손하고 저를 모욕한 인물을 법적으로 응징하는 데 필요한 증거자료입니다.
앞으로 저를 함부로 모욕하거나 비난하는 악플러들이나 유튜브들은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징해 드리겠습니다.
악플초불행 선플만복래. | Posted on 20/Feb/2020 22:45:52

Lee Oi-soo Instagram – 요즘 모월공방에 틀어박혀 진흙 만지는 일로 세상 잡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흙은 정직합니다.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요.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그릇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전문가들 말로는 날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 초보 수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측근들에게 막걸리 사발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저로 하여금 전력을 기울이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의 장인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쓸 물건은 대충 만들고 남이 쓰는 물건은 온갖 정성을 다 바칩니다. 이 징신이 바로 인간을 널리 이롭게 만드는 정신이지요. 저도 정신만 그대로 물려 받은 듯 합니다. 날마다 밤을 새워도 싫증이 나지를 않습니다.
히지만 물레를 중단하고 집필실로 귀환할 때는 녹초가 되어 걸음이 휘청거릴 지경입니다.
이럴 때 쓰라고 옛분들이 말씀을 남기셨지요.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꿰어 쓰랴. 하지만 지금은 바늘 허리에라도 실을 꿰어 쓰고 싶은 심경입니다.
어제도 너무 두껍다는 이유로 20점을 버렸습니다. 그 대신 새로 17점을 만들었지요. 곁에서 문하생들이 탄복하는 건 제 솜씨가 아니라 제 치열성입니다.
인증샷 올립니다.
Lee Oi-soo Instagram – 안녕들 하십니까.
사람이 몹시 그리울 뿐 저는 아직 별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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