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Ja-yeon Instagram – 오늘의 싱거운 잡담.
하루. 명랑하고 호기심 많은 밴쿠버 강아지. 냄새 맡고 핥기를 좋아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내 종아리의 맛을 가장 잘 아는 존재.
하루는 카메라를 싫어한다.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카메라라는 사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를 꺼내거나, 옮기거나, 단순히 손에 들고 있을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에는 기겁하며 저멀리 꽁무니를 내뺀다. 몇 번 기습적인 촬영을 시도하다가, 하루가 싫어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게 미안해져서, 그만 포기해야겠다 생각하며 무심코 무릎 근처에서 셔터를 그냥 한 번 눌러봤는데, 하루가 도망가지 않았다— 하루가 무서워 한 건 카메라 자체도 아니고, 셔터소리도 아니고, 카메라를 댄 내 얼굴이었다. 이걸 이렇게 늦게 알게 되다니! 상상해보면, 한쪽 눈은 찡그리고, 한쪽 눈은 커다란 유리렌즈로 확장된 인간의 모습은 하루에게 좀 괴기스러운 것일지도.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은 사진들은 초점도 안 맞고 구도도 이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하루의 얼굴이 담겨있다. 말갛고 편안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
어쩌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카메라공포가 있고,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것 같은데, 그건 결과물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전에 카메라를 들고 선 존재가 주는 위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메라라는 사물은 꽤나 명백하게도 찍는 이를 주체로, 찍히는 이를 대상으로 만드는데, 하루와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대상화’란 ‘먹잇감화’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더라도 큰 비약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 반면 가슴팍에 카메라를 두고 아래를 보며 사진을 찍는 이안카메라의 경우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주는 느낌이 매우 공손할 것 같다는 상상. 내가 누군가를 찍는다면 공손한 몸의 모양으로 찍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이안카메라는 비싸고 실용성이 떨어지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하루와 눈을 마주치며 셔터를 누르던 일은, 약간 자아분열적이면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너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도, 너를 찍겠다는 나의 욕망을 거두지 않아도 되는 타협점에서의 기쁨. 그리고 너를 조금 이해했다는 기쁨. 한 손으로는 딸랑이를 흔들면서 한 손으로는 셔터를 누르는 아기 사진 전문가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발견이겠지만! | Posted on 06/Aug/2024 05: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