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교사의 삶이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에서 영원히 멈추어섰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장소가 가장 마음 아픕니다. 그곳이 아니면 개인적인 사유로 취급되거나 묻힐 거라 여긴 겁니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 그 수많은 징후들을 목격하는 동안 우리가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뉴스에서는 교권 추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올라간 탓에 교사들의 인권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틀린 말입니다. 교권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되찾는 일이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위협했다면 그건 애초 인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교권이라는 말은 교실에서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가 따로 존재하고 서로 상생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합니다. 아닙니다. 인권은 나눌 수 없습니다. 인권은 누가 더 많이 누리려고 애쓸 수 있는 땅따먹기가 아닙니다. 그런 잘못된 말의 쓰임과 인플레가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일부 학생과 부모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방종하고도 아무런 견제를 받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걸 인권의 회복이라고 자랑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인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감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현상이 교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당했던 폭력과 부조리를 정상으로 애써 돌려놓았다면, 그간 악습으로 위태롭게 눌러왔던 것들을 원칙과 절차를 통해 규제할 수 있는 엄정한 도구 또한 함께 고민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룰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우리 정서가 원칙보다 죽음에 더 가깝습니까.
보나마나 서로 탓을 돌리는 정치권과 진영의 공방이 이어질 겁니다.
저는 남탓을 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결과물을 가지고 나올 쪽에 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허지웅쇼 #허지웅쇼오프닝 #sbs라디오
조금은 기억에 남을만한 아침이었지요.
평소에는 알아서 잘 깨거나 핸드폰이 잠을 깨우는데요.
오늘은 나라가 깨워줬습니다.
전역한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네요.
다들 대피는 잘 하셨는지요.
그런데 이미 며칠 전 이례적으로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통보되었고
지속적으로 뉴스를 통해 알려졌던 예정된 일이
굳이 새벽에 안전도 긴급도 아닌 ‘위급’ 재난문자를 통해 알려야할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재난문자를 꺼둔 폰도 전부 울렸으니까요.
게다가 이건 일본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받아야지 서울 시민이 받을 게 아니잖아요.
결국 30분도 안되어서 오발령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요.
오발령이었다는 행안부의 공지조차 위급재난문자로 왔다는 대목에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크게 웃고 시작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깊은 뜻이 느껴집니다.
이후로는 정부와 서울시, 합참의 해명이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로 엇갈리고 있는데요.
차라리 정부와 군과 지자체가 한 목소리로 과도한 대응이었을지 몰라도 해야만 했다고 해명했다면 적어도 계획이 있었구나, 납득이 갈텐데.
우리가 위급시에 어떻게 허둥대는지 지켜본 북쪽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게만 좋은 일이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진짜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시민들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처에 게으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허지웅쇼 #오프닝 #sbs라디오
해방을 맞은 우리가 정부를 구성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것.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을 만들면서 친일파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고,
같은 해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입니다.
그렇게 출범한 반민특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응원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친일 세력이 다시 구심점을 찾고 반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지시 아래 ‘우리’ 경찰들이 ‘우리’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습니다.
이들은 조사관들을 폭행하고 소중한 자료들을 강탈했습니다.
1949년 6월 6일 아침의 일입니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에 의해 실질적인 특위 활동은 중단되었습니다.
몰락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외신에 직접 지시한 일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결국 사회에 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반민특위는 허망하게 해체되었습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또한 폐지되어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는 수단도 사라졌습니다.
6월 6일 현충일. 국가장 기간과 더불어 유일하게 국기를 조기로 달아야 한다 규정하고 있는 날이지요.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오늘 이 중요한 하루. 함께 떠올려봅니다.
49년 6월 6일의 아침과 그날 사라진 것들에 관해. #허지웅쇼 #오프닝 #sbs라디오
어느 고령의 택배 기사가 아파트에서 배달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가슴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결국 쓰러졌습니다.
아내가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배송 예정인 단지 주민들에게 문자로 상황을 알렸습니다.
배송을 못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아들을 불러 밤 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모두 마쳤습니다.
아내의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단체 대화방을 통해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입주자대표회의측이 모금에 나섰습니다.
100만원이 목표였으나 주민들의 참여가 계속 이어진 탓에 248만원이 모였습니다.
이 돈은 부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손으로 제대로 쥐지도 주머니에 넣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말입니다.
지금 제게 이 풍경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제 말과 생각을 더하고 싶지 않습니다.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입주자 일동이 성금과 함께 보낸 편지 속 문장 하나로 오늘의 오프닝을 마칩니다.
“저희 입주민들에게 기사님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허지웅쇼 #허지웅쇼오프닝 #sbs라디오
저는 지금 이 글을 게시하고 있는 계정 이외에 어떠한 sns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다른 분에게 쪽지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당신의 얼굴을 알고 싶습니다. 답장을 기다립니다, 진심으로…” 같은 기름진 글은 부모님에게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저런 문장 끝의 말줄임표를 보면 점 하나 더 찍기 전에 서둘러 저자의 명치를 치고 싶습니다). 대개 제가 팬들과 은밀히 소통하기 위해 별도로 만든 계정이라는 컨셉입니다. 저는 소통은 만나서 눈 보고 하는 거라 여기는 옛날 사람입니다. 신고를 계속해도 이런 계정들이 멈추지 않고 생성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쪽지를 받으면 무시하고 사칭 계정으로 신고하여 여러분의 돈과 신장을 보호하세요.
일본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오에 겐자부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지요. 노벨상을 받은 이후 일왕이 훈장을 주려했으나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민주주의자이고 민주주의 질서 위에 군림하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와의 이야기가 재미있지요.
미시마는 “오에의 시대가 올 것이다. 내가 상을 받은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을 사람은 오에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고 할복 사건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미시마 유키오는 참 복잡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할복으로 삶을 멈춘 우익이었으나 오에 겐자부로를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나 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난징대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거세게 비판했고
역사와 피해국가를 향해 일본은 제대로 사과해야한다고 평생에 걸쳐 외쳐왔습니다.
그리고 우익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헌법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누군가의 삶이 그 자체로 본이 되고 정답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의 소설 <만엔원년의 풋볼>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허지웅쇼 #sbs라디오
3.1절에 관련된 이야기를 드릴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저는 왜 이 날이 우리 공동체의 가장 기쁜 하루가 아니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 날인가에 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미국이 축제처럼 지내는 독립기념일은 실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 아닙니다.
1776년 7월 4일은 독립을 선언한 날이고, 실제 독립이 승인된 파리조약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그날 조지 워싱턴 장군과 병사들은 여전히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리 임시정부 또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3월 1일을 독립선언일로 지정하고 축하했습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독립을 선언한 경축일로 삼고 27회 기념일로 축하했고요.
2년 후 만들어진 우리 헌법도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그 정신을 승계하여 정부를 수립했다 밝혔습니다.
3월 1일은 국가의 탄생을, 우리의 뿌리를 축하하는 가장 기쁜 날입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3월 1일은 언젠가부터 그저 추도하고 묵념하고 애도하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3.1절에 태극기를 조기게양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3.1절을 엄숙함 속에 사소하게 얼버무리고 우리 뿌리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의 입지는 늘어만 갔습니다.
어제는 세종시에서 일본 국기를 걸어둔 집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하루가 지났습니다만, 3.1절의 기쁨과 환희에 관해 가족과 함께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허지웅쇼 #sbs라디오
이른 아침 일어나 청소를 하다가
불현듯 나도 모르게 피규어 상자에 시선이 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전시해두지 않는 피규어들을 모아놓은, 조금은 애물단지.
그렇게 들여다보다 놀랐습니다.
하나하나 이미 가지고 있다는 걸 잊고 웃돈을 주더라도 살만한 것들이었어요.
내 마음에 쏙 드는 가장 멋진 것들.
그런데 나는 얘들을 이렇게 캄캄한 상자 속에 방치해두었구나.
몇개를 꺼내 먼지를 털고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하나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이워크인데 작고 귀여운 털복숭이라 샴푸로 조물조물 빨았습니다.
건조기 위에 올려두고 왔는데 오늘 방송 끝나고 집에 가면 다 말라 있을까요.
내게 꼭 맞는 가장 멋진 것을 찾아 헤매는데 열중하느라
이미 오래 전에 찾았고, 가졌고, 그러나 잊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대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가만히 앉아 생각해봅니다. #허지웅쇼 #sbs라디오
익숙한 노래가, 노랫말이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1982년도에 만들어진 이 곡은 이미 같은 해 홍콩에서,
그리고 곧이어 대만의 노동 운동 현장에서 불리면서 80년대 내내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최근에는 홍콩의 우산혁명에서, 그리고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지요.
이 곡을 부르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감안해보면
북한을 제외한 사실상 아시아 전역에서 이 곡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자발적으로 전파된 노래이기에 나라마다 박자와 가사는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그게 일본이든, 태국이든, 대만, 홍콩,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든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대목은 남았습니다.
오늘로 광주민주화운동이 43주년을 맞았습니다.
때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때로는 입밖에 꺼내선 안되는 일로 여겨졌던 긴 세월동안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더 나은 삶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그렇게, 깃발처럼 섰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가사처럼 지금 당신의 고민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고,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가사처럼 등을 두드리며 더불어 걷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허지웅쇼 #sbs라디오
아무 것도 헛되지 않았다. 기쁨과 평안한 마음으로 가득한 밤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 저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멈추어 서서 지금 이 순간을 탐색하고 발견하고 누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하고 예쁜 건 지나간 것도 다가올 것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그래서 모든 게 조금 더 버겁고, 하지만 덕분에 조금 더 강한 여러분들에게 문득. 오랜만에 밤인사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평안한 밤 되시고 내일 다시 만날 수많은 ‘지금 이 순간’들을 풍요롭게 누리시길. 잘자요.
지난 3.1절 일장기를 게양해 물의를 빚었던 세종시의 주민이
세종호수공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촉구’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직업이 개신교 목사인 것으로 밝혀진 그는 소녀상 앞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위안소는 합법이고 위안부는 직업여성이며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에 사로잡혀 신념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 책임이 아니라 피해자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자주 보이는데요.
2차대전 이후 완전히 폐기된 식민주의 담론의 연장선입니다.
이제 와서 이 해묵은 폭력을 새롭고 기발한 듯 반복하는 것에서 또한, 앞서 말한 확신과 신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강행해야만 할 때 설득과 동의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 그저 피해자 탓으로 지르고 보는 행위는
그들이 스스로를 순교자이자 홀로 진실을 알고 있는 고독한 의인으로 여기기에 가능합니다.
종교는 없지만 이럴 때 자주 떠올리는 문장을 소리 내어 되뇌어봅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허지웅쇼 #sbs라디오
한 때 운동선수를 꿈꾸었으나 절도로 징역을 살고 사기와 포주일을 하다가 다시 감옥에 간 남자.
나와서 핫도그를 팔다가 우연히 요식업으로 빛을 보게 되어 식당을 열었고,
그 식당에 들른 독재자의 눈에 들어 그의 요리사로, 그리고 다시 용병 그룹의 수장이 되어
정규군이 할 수 없는 민감하고 불법적인 일을 수행하는 독재자의 숨은 오른팔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큰 힘을 얻고 이에 부담을 느낀 독재자와의 관계가 묘하게 틀어지나 싶더니
정규군이 자기 부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며 급기야 지난 주말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해괴한 일이지요.
그런데 거침 없이 진격하던 그가 모스크바를 목전에 두고 회군을 결정했다는 것.
푸틴 또한 그를 처벌하지 않고 벨라루스로 망명하게 허락했다는 것.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일까요.
말해봐요.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넌 나한테 모욕감을 주었어.
정말 나 죽이려고 그랬어요?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빵!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잖아요.
칼을 가지고 동탁을 찾았으면 찌르든가 끝까지 꺼내지 말든가 둘 중 하나이지요.
조조처럼 칼을 꺼냈다가 바쳐봤자 동탁이 속을리도, 용서할리도 없습니다.
조조도 이병헌도 돌이킬 수 없었던 걸 프리고진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푸틴과 프리고진은 서로 사랑했던 걸까요.
지켜봅시다. #허지웅쇼 #오프닝 #sbs라디오
그간 전세계에 수없이 많은 사이비 교회가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예언이 또한 존재했습니다.
그 가운데 들어맞은 것은 단 하나도 없지요.
그럼에도 신도들은 예언이 틀릴 때마다 더 굳건한 믿음을 과시하고, 교주의 신성을 지키기 위해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모아 분석한 <예언이 끝났을 때>라는 책이 있는데요.
저자들은 이와 같은 인지부조화 현상을 두고,
교주의 약속과 예언이 거짓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여태까지 벌여온 일이 고스란히 신도들 자신의 어리석음 탓으로 돌아오는 걸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더 필사적으로 믿는 것 이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쉽게 넘나들게 되는 것이겠지요.
최근 국내의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 <나는 신이다>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관심과 분노가 공감과 이해로 이어져,
사이비 종교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잘못된 믿음에, 인간관계에, 계약에 묶여있으나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지웅쇼 #sbs라디오
보내주신 사진을 보고서야 제가 요즈음 얼마나 말랐는지 깨달았습니다. 세끼에 야식까지 의무감으로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걱정은 그만~
영화 <피그>는 돼지 한마리와 함께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은 조용한 사람입니다. 네,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산 속에서 돼지 한마리와 동고동락하며 트러플을 채취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밤 중에 괴한들이 나타나 그의 돼지를 훔쳐 갑니다.
15년 동안 도시를 등지고 살았던 그는 돼지를 되찾기 위해 세상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결국 돼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저앉아 흐느낍니다.
돼지를 빼앗긴 사람도, 빼앗아간 사람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삶에서 가장 소중한 걸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도시의 왕이 되어 군림했습니다.
어느 쪽도 행복해보이지는 않아요.
어느 순간 주인공이 말합니다.
만약 걔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내 머릿속에서 걔는 아직 살아있을 거야.
하지만 죽었어요.
그래 맞아.
그는 어딘가 홀가분해보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과거를 되돌리려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삶으로부터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것에 지치고 두려워서.
이미 되돌릴 수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돌이키는 일에 사로잡혀서.
정작 바로 지금 이 순간 더 크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허지웅쇼 #오프닝 #SBS라디오
파헬벨의 캐논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요.
파헬벨도 캐논도 몰라도 상관없지요. 그걸 듣지 못했을리는 없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대음악들이 캐논을 변주하거나
코드를 그대로 가져다 썼으니까요.
몇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귀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대중음악계에서는 캐논의 코드를 머니 코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파헬벨의 캐논은 지난 300년 동안 원래 그리 유명하고 널리 응용되어 사용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실제 이 곡이 재발굴된 건 1970년대 이르러 라디오가 주목하면서부터 입니다.
그마저도 클래식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건데요.
1982년 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캐논 변주곡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원곡보다 더 유명한 변주곡이 되어 대중음악 전반에 지워지지 않을 영향을 끼쳤고,
IMF위기가 한창이었던 98년도에 방한했을 때는 수익금 전액을 한국의 실직자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알든 모르든,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한 순간 그의 곡들에서 영감과 평화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도 평화와 안식이 함께하길 바라며.
조지 윈스턴의 명복을 빕니다. #허지웅쇼 #오프닝 #sbs라디오
드라마 <파고>의 2시즌에 보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작은 소시민의 행복을 꿈꾸었던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내의 범죄를 대신 은폐하려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건데요.
아내의 돌발행동으로 번번이 일이 틀어질 때마다 이것만 해결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왔던 그는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린 안될거야. 우린 너무 달라. 자긴 늘 뭔가 고치려 해. 아무것도 고장난 게 없는데도 말이야.”
아내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남편처럼 그녀도 행복해지고 싶었고요.
다만 지금 당장 손에 잡힐만큼 가까이 있는 작고 확실한 현실의 행복들에 무관심했습니다.
오히려 고치고 바꿔야할 대상으로 여겼지요. 좀 더 거대하고 화려한 꿈을 좇기 위해서요.
실제 그런 걸 얻어서 정말 행복해진 사람이 있는지,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데 말이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고장난 게 없는 현실에 감사하고 행복을 놓치지 않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고칠 게 없는 걸 고치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망치는 사람일까요. #허지웅쇼 #sbs라디오
전도사: 혹시 신을 믿으십니까?
시민: 관심 없습니다. (저항+1, 열 받음)
전도사: 신은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 관심 없습니다. (저항+1, 열 받음, 전도의 효율이 급격하게 하강)
전도사: 믿음 이외에 어떠한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천국의 문이 당신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시민: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항+1, 열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벗어남, 전도 효율 엉망진창)
초전도사: 혹시 신을 믿으십니까?
시민: 오오 감사합니다. 방금 저는 신을 보았습니다. (저항 0, 손실 0, 전도율 100%)
이것이 바로 상온 상압에서 저항=0의 상태를 이끌어내는 초전도사의 전도입니다(절대영도에서는 전도사가 무슨 말을 하든 너무 추워서 아무도 저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항=0일 수 있음). 이상 문과의 초전도체 이해 끝. #초전도체 #문과라서죄송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음식 가운데 가장 기괴한 무언가였다. 여기에 비하면 집단 폐사 닭튀김은 오르톨랑이고 군데리아는 사이공 반미다. 먹는 거 남기면 지옥 가서 주워먹는다고 교육받은 세대라 어찌저찌 다 먹기는 했는데 아무튼 너무 기괴해서 + 최대한 뭔지 모르고 사셨으면 하는 마음에 부득이 사진은 흑백으로 처리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리고 이 문제가 충분히 소명되고 내용이 구별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발판으로 더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라는 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제대로 소명되지도, 앞뒤가 충분히 구별되지도 않은 상태라면.
그럴 때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라는 말은 흡사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후렴구 마냥 당황스럽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기능도 의미도 없습니다.
혹은 종종 책임질 대상을 희미하게 만들어 더 이상의 논의와 고민을 막으려는 악의를 띄기도 합니다.
같은 말도 선언의 시기와 화자의 의도에 따라 지혜로울 수도, 껍데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
오늘 오전에는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라는 말에 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허지웅쇼 #허지웅쇼오프닝 #sbs라디오
10년째 애용 중인 애착 셔츠. (주: 정지영상 아님) (주2: 중간에 콧물 먹은 거 아님)
생방 1분 30초 전 #허지웅쇼
기술의 발전, 특히 통신의 발전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지금 새삼스레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더 많이 쏟아져 들어왔다가 다시 쏟아져 나갑니다.
그래서 과연 우리는, 그렇게 쏟아져 들어왔다 나간 것들이 남긴 것만큼 현명하고 넓어졌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갈수록 더욱 휘둘리기 쉬운 개인, 타인의 의도대로 뭉쳐지기 쉬운 집단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왜 특정 의제는 더 쉽고 빠르게 전파되고 몇시간 만에 주류 언론까지 잠식할 수 있는지.
왜 그런 특정 의제들은 평균적으로 떡밥이 식는 시간과 무관하게 더 오래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왜 공익과 직결되는 진짜 뉴스들은 토론의 장에서 쉽게 증발되어 버리는지.
왜 현대 전쟁에서 수행되는 하이브리드 정보전의 방식이 우리 인터넷 여론 형성 과정에서 발견되고 있는지.
그렇게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증오와 갈등의 결과물들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부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동북아 정세와 안보 위협의 폭풍 속에서,
관련 부처와 학자들에게 이런 현황에 관한 통찰과 계획이 있기만을 바라며. #허지웅쇼 #허지웅쇼오프닝 #sbs라디오